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오니, 창문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쿠로칭, 집에 있구나. 우선은 진심으로 안심한 후 무라사키바라는 성큼성큼 뛰어 들어가 현관문을 급하게 열어젖혔다. 순간 집안에서 이질적인 향기가 훅 풍겨 나와서, 그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 집에서 난다는 것이 이상할 뿐, 사실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내음이었다.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달짝지근한...
쿠로코의 침대는 왼쪽으로 아주 조금만 고계를 돌려도 심플한 백색의 시계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기계적으로 시간을 확인한 쿠로코는 다시금 감기려는 눈을 몇 번 깜빡여 겨우겨우 잠을 몰아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7시 24분. 거의 오차 없는 기상 시간에 스스로도 가끔 감탄하곤 한다. 옆에 누운 남자는 쿠로코가...
수업 시간이어서인지 평소에는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떠드는 장소 중 하나인 옥상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예상한 대로의 전개에 아오미네는 들어온 문을 대충 걸어 잠그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스팟을 찾아 털썩 주저앉았다. 결코 청결한 장소가 아닌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짙은 색의 교복 바지는 대충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 깨끗한지 더러운지 티도 잘 나...
인적 드문 공원에 철썩, 하고 공이 그물망을 가르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골대에 한 번 튕기고 슈터의 발치로 또르르 굴러오는 것까지 완벽히 계산된 듯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냥 대충 던지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아오미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워든 공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돌렸다. 자유자재로 공을 다루는 자신의 모습을...
“오늘은 그 오빠 와요?” 하원한 유아반 아이들의 턱받이를 빨래 바구니에 넣고 있던 쿠로코가 고개를 들었다. 짧고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억지로 당겨 묶은 양 갈래 머리를 한, 볼이 빵빵한 소녀가 멀뚱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후에 있었던 공놀이 시간을 지나치게 즐긴 탓일까, 기묘하게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자연...
“이런…” 사물함을 열자마자 와르르 쏟아지는 각양각색 상자들의 공격에 키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찬 헛숨을 삼켰다. 개중에는 대체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꽤나 무거운 것들도 있어서, 발등은 비상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후 연습 괜찮을까… 왠지 부을 것 같은 확신적인 느낌이 드는데. 작게 혀를 차며 키세는 아픔을 털어내듯 머리를 가볍게 ...
주말이었지만 바로 월요일부터 시험에 돌입하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가혹한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집 안 혹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에 열중했다. 이틀 내내 비를 뿌려대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하게 개어서 필사적인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학생들을 자꾸만 유혹하고 있었다. 원래는 쿠로코의 마지막 과외 역시 학교 도서관 휴게실에 이루어질 예정...
“잘 모르겠어.” 불퉁한 목소리가 서늘한 교실 공기를 갈랐다. 그의 몸에 비해 많이 작은 책걸상에 몸을 끼워 넣은 것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그 음성의 주인공은, 머리칼이 자꾸 흘러내려 시야를 방해하자 짜증스런 손놀림으로 아무렇게나 쓸어 올려 묶고는 다시 문제에 열중했다. 글씨, 동그라미, 화살표 등이 어지럽게 휘갈겨진 노트를 마치 안광(眼光)으로 뚫을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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